2011년 06월 02일
당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난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찌 보면 그 또한 그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을 개척하는 팔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렇게 사는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도 넓은 범위에서의 '운명'이 아닌가 한다.
아직도 20대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 우습지만, 살면 살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얼마나 먹었다고.;;;) 각자의 팔자는,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타고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이 내게 하는 관상이나 사주 등에 대한 이야기에 (예전에도 그랬지만)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건 좀 한심하기도 한 듯.;;;)
삶이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 그리고 팔자와 운명은 무언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누리고자,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늘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우리 의지대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이 과연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대체로'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서 결과가 얻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갈수록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 자라나느냐가 무척 중요한 세상이 되었으며, 이건 비단 우리나라와 지금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능력이 있다 해도 어쩌겠는가. 조선시대에 노비로 태어났다면 어쩌면 지금만도 못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삶의 방향이란 대체로 본인이 뜻했던 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흘러가진 않을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난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정말 '예정설'처럼 무언가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던 것이 없진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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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고작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살자' 이런 말이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삶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의 삶과 운명, 팔자에 대한 자신을 갖고 사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에도 한 번 이런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사람이 삶을 사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천양지차다.
이미 내 삶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서 내 삶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단계로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말란 법은 없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런 따위의 생각을 왜 하지 못한단 말인가.
어쩌면 정말 '어차피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굳이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떤 성공회 대주교의 무덤에는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고 그것을 아쉬워하는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죽으면서 내가 변했다면 가족도 변했을 것이고, 사회도 국가도 세상도 변했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가 계속 처음과 같은 원대한 목표와 이상을 가졌다면 세상은 변화시키지 못했더라고 가족은 사회는 변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조금씩 타협하면서, 그리고 꿈을 줄여가면서 그 사람도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다.
사주와 관상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참으로 한심하게도 어찌 보면 나에게도 그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잘 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반색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그것이라도 믿는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누구나 다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냥 '한 번 듣고 마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는 것과 '난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결과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를 볼 수 있겠는가.
물론 또한 난 여기서 '잘 될 거라는 확신만 가지고 대충 살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처음에도 이야기했듯이 대체로 삶은 그것이 꼭 정비례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가진 능력과 노력에 비례한다.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만큼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결국 노력하면 잘 돼요. 뭘 또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진 노력'과 '그냥 하는 노력'은 당연히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노력을 하지 않을 거라면 확신이라도 가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확신만 가져도, 삶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혹시 되겠어?'라고 로또를 사는 것과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로또를 사는 것은 1주일 동안 삶의 행복감에도 많은 영향을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노력한다면 그리고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세상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걸 알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별로 손해볼 것도 없지 않는가!
쓸데없는 이야기 1.
이제 이글루스는 더 이상 예전의 이글루스가 아닌 것 같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해봐도, 커뮤니케이션즈에서도 그냥 방치해두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이글루스는 많은 추억과 행복을 가져다 준 곳임을 모르진 않지만, 이글루스에 들어오는 게 이젠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쓸데없는 이야기 2.
그래서 트위터를 한 번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영리한 전화는 아닙니다만, 우선은 인터넷만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글을 워낙 장문으로 쓰는 스타일이라 140자 안에 원하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것 같아 함부로 시작하지도 못하겠네요. 고민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 3.
결국 10만 명 정모는 이렇게 없었던 이야기로. ㅎ 아쉬우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거든요. 그렇습니다. : )
아직도 20대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 우습지만, 살면 살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얼마나 먹었다고.;;;) 각자의 팔자는,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타고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이 내게 하는 관상이나 사주 등에 대한 이야기에 (예전에도 그랬지만)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건 좀 한심하기도 한 듯.;;;)
삶이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 그리고 팔자와 운명은 무언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누리고자,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늘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우리 의지대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이 과연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대체로'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서 결과가 얻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갈수록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 자라나느냐가 무척 중요한 세상이 되었으며, 이건 비단 우리나라와 지금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능력이 있다 해도 어쩌겠는가. 조선시대에 노비로 태어났다면 어쩌면 지금만도 못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삶의 방향이란 대체로 본인이 뜻했던 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흘러가진 않을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난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정말 '예정설'처럼 무언가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던 것이 없진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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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고작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살자' 이런 말이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삶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의 삶과 운명, 팔자에 대한 자신을 갖고 사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에도 한 번 이런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사람이 삶을 사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천양지차다.
이미 내 삶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서 내 삶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단계로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말란 법은 없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는 이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런 따위의 생각을 왜 하지 못한단 말인가.
어쩌면 정말 '어차피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굳이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떤 성공회 대주교의 무덤에는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고 그것을 아쉬워하는 글이 적혀 있다고 한다.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죽으면서 내가 변했다면 가족도 변했을 것이고, 사회도 국가도 세상도 변했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가 계속 처음과 같은 원대한 목표와 이상을 가졌다면 세상은 변화시키지 못했더라고 가족은 사회는 변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조금씩 타협하면서, 그리고 꿈을 줄여가면서 그 사람도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다.
사주와 관상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참으로 한심하게도 어찌 보면 나에게도 그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잘 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반색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그것이라도 믿는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누구나 다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냥 '한 번 듣고 마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는 것과 '난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결과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를 볼 수 있겠는가.
물론 또한 난 여기서 '잘 될 거라는 확신만 가지고 대충 살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처음에도 이야기했듯이 대체로 삶은 그것이 꼭 정비례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가진 능력과 노력에 비례한다.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만큼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결국 노력하면 잘 돼요. 뭘 또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진 노력'과 '그냥 하는 노력'은 당연히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노력을 하지 않을 거라면 확신이라도 가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확신만 가져도, 삶은 당신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혹시 되겠어?'라고 로또를 사는 것과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로또를 사는 것은 1주일 동안 삶의 행복감에도 많은 영향을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노력한다면 그리고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세상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걸 알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별로 손해볼 것도 없지 않는가!
쓸데없는 이야기 1.
이제 이글루스는 더 이상 예전의 이글루스가 아닌 것 같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해봐도, 커뮤니케이션즈에서도 그냥 방치해두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이글루스는 많은 추억과 행복을 가져다 준 곳임을 모르진 않지만, 이글루스에 들어오는 게 이젠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쓸데없는 이야기 2.
그래서 트위터를 한 번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휴대전화는 영리한 전화는 아닙니다만, 우선은 인터넷만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글을 워낙 장문으로 쓰는 스타일이라 140자 안에 원하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것 같아 함부로 시작하지도 못하겠네요. 고민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 3.
결국 10만 명 정모는 이렇게 없었던 이야기로. ㅎ 아쉬우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거든요. 그렇습니다. : )
# by | 2011/06/02 19:01 | 삶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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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내일이 달라지리라는 데 공감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오늘을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악순환을 낳는 것 같아요.
제게도 이글루스는 좋은 기억을 많이 선사해준 고마운 곳이지만
말씀대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의 이글루스는 좁고 깊었다면, 지금은 대형 포털의 블로그랑 별 차이가 없네요.
오히려 규모가 작으니 더 볼품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은 추억일 뿐인가 싶은...
지금의 이글루스는 대형 포털의 블로그만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라오는 글에서도 삶에 대한 향기는 느낄 수 없고, 어떻게 보면 인터넷의 리플 같은 수준이 아닌가...
그 리플이라도 수준이 높고, 존중과 배려가 있으면 괜찮은데, 이글루스에는 그런 것조차 없지 않은가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즐거운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 )
한 번 다시 추진해볼까요?^^
이런 걸 하려면 SNS를 이용하면 좋은데 말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