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단상.

# 1. 시험 단상.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까지 시험 스트레스는 나와는 정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때까지 뭔가 '성실히 준비해서 시험을 봤다'고 할만큼 열심히 한 적도 없었고,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성적 문제 따위로 힘들어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단지 난 시험을 볼 때만 무척 집중해서 보았고, 시험 전에는 반드시 기도를 했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 정말 늘 결과는 준비했던 것에 비해 항상 좋았다. 중학교 입학시험과 1학년 때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아마 그 절정이었던 듯하다.

시험을 보고 들어간 고등학교에서 첫 중간고사 성적은 무척 충격이었다. 아무리 놀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성적을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놀았던 것에 비하면 잘 나온 성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마음 속으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난데, 그런 성적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좀 분발을 해서 기말고사 때에는 등수를 1/3로 줄일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뭔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험에 얽매이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던 게. 그 전까지는 별로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시험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던 듯하다.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야 했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할까 봐 조바심도 많이 냈던 듯하다. 그럼에도 난 아는 문제를 틀린다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긴 했지만, '맞출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경우는 적지 않게 있었고, 더불어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는 시간에 쫓기는 시험 문제를 풀다가 배분을 잘못해 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제출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오늘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험을 한 번 보았는데, 최근 준비를 좀 한 데다 예전에 시험을 보았던 경험이 있어 넉넉하게 여유를 부리다 문제를 다 풀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문제를 다 풀었다면 상관 없는데, 풀지 못한 문제 가운데 분명히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있었을텐데 막상 이렇게 문제를 다 풀지 못하게 되자 무척 짜증이 났다.

예전부터 그랬는데 사실 난 결과에는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게 무척 싫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그 전년도 문제를 풀어본 적이 있었다.(누구나 다 하는 일이겠지만) 전년도 문제를 풀었더니 의외로 잘 맞지 못해서 내가 받은 성적은 388.5점. 그 해엔 수능이 무척 쉬웠던 데다 난 문제집 등을 풀면서 전년도 문제를 경험해보았을 거란 걸 감안하면 결코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를 풀고 나서 검토해 보니 그게 내가 맞을 수 있는 최고 점수였다.

실제 수학능력시험에서 난 점수는 그 전년도 문제를 풀었을 때보다 많이 못 미쳤지만, 등수는 훨씬 잘 나왔다. 아마 전년도에 388점 정도였다면 전국에서 1.5% 내외였던 것 같은데, 실제 시험에서 난 그것의 1/6도 안 되는 등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난 기분이 무척 나빴다. 실제 시험에서는 듣기 방송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바람에 충분히 맞을 수 있었던 문제를 5문제나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미련이 가장 적게 남는 게 제일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미련이 가장 적게 남는 것이 실제 결과보다 좋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그렇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난 미련이 남고, 마음에 아쉬움이 생기는 것이 가장 싫다. 오늘 시험 본 결과가 무척 찝찝한 것은 그것 때문이다. 아마 내가 좀 더 빠르게 풀었다면 생각했던 것만큼 나머지 문제들에 집중을 못해 결과가 더 좋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라도 아쉬움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 2. 부정행위(커닝, 치팅) 단상

참 비호감스러운 이야기만 하는데(-_-;), 살면서 난 부정행위(커닝, 치팅)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는 작은 쪽지 시험에서도 그랬던 적이 없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나쁘지 않은 성적 덕분에 '누군가의 것을 베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일이 없었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깊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빼면 대개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일 거다.

자존심의 문제에서 보면 경쟁을 하는 아이의 것을 베낀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고, 효율성의 면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것을 보았을 때 내가 풀었을 때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난 고집도 센 편이어서 내 결정과 답안에 대한 주장도 상당히 강한 편인데, 아마 내가 깨끗하고 청렴결백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부분들이 결과적으로 '부정행위는 나쁜 거야'라는 결론으로 합리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와서 깜짝 놀란 건 부정행위가 상당히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밖에서도 여기에서 딴 자격증이라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것이어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회에서는 자격증 시험을 본다던가 할 때 상당히 냉정하고 냉혹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데, 이곳은 그렇지가 않으니 노력을 덜 들여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니 말이다.

그동안 내게 필요한 자격증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격증과 일치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난 그런 부분으로부터 좀 자유로웠는데, 오늘 본 시험은 달랐다. 내가 유독 강점을 보이는 부분이라, 사람들이 시험을 보기 전부터 무척 내 주위 자리에 대한 경쟁이 치열했고, 나름대로 준비를 조금 해왔던 난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무임승차하게 되니까) 그렇다고 날 선 모습을 보이는 것도 별로 좋은 건 아니었다.

예전에 중학교 때 답안을 보여준 친구가 96점을 맞고, 본 친구는 100점을 맞은 일이 있었다. 양심상 하나를 덜 베낀다고 하나를 덜 베끼고 그 문제는 찍었던 건데, 그 문제가 히필 틀렸던 것이어서 베낀 친구가 보여준 친구보다 더 맞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정말 있었던 거다. 누구라도 두 사람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별 문제는 없었고, 그 시험도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그냥 그렇게 넘어갔는데, 만약 나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누군가 내 답안을 본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맞게 된다면 난 정말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을까.

부정행위에도 그래서 '도'가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사람들 입에 걸린 '밥줄' 앞에 '도'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아마 한 열흘 정도 뒤면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예전 중학교 때 친구처럼 결과가 나온다면 난 상당히 당혹스러울 것 같다. 치사한 마음이지만 내가 하나라도 더 맞았으면 좋겠다.

by honest | 2010/01/30 18:09 | 단편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dooheever.egloos.com/tb/518732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