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재범'에게만 냉혹한가.

2PM이라는 그룹의 가수 '재범'이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무슨 공간이라고 하던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직 유명해지기 전인 어느 시절, 블로그나 싸이월드 정도에 해당하는 어떤 공간에 올린 글이 문제가 되었나 보다. 여론의 변화가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비난이 증폭될 때는 하루가 다르게 냉혹하고 무서운 글들이 판을 치더니,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출국하니 갑작스레 또 다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그에 대한 동정론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냄비'라는 비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론을 평가하는 게 꼭 틀린 말만은 아니지 싶다.

현재 비판은 대체로 '무서운 민족주의의 환상'과 '지나친 순혈주의와 애국주의' 쪽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난 이와는 별개로 '과연 우리가 정말 재범에게 냉혹'했는지,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짚어볼까 한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에도 사람의 신원에 대한 조사는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 '레 미제라블'에 보면 주인공인 '장 발장'이 출소하여 어느 도시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의 시선을 보내며 그를 외면하는데, 어느 여각에서는 그에 대한 신원조사 결과를 토대로 숙박을 거부한다. 이로 인해 '장 발장'은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며 살게 되는 미리엘 신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현실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공무원이라든가, 대기업의 채용 등에 있어서 아직도 '신원조사'라는 항목은 무척 폭넓게 퍼져 있고, 이는 고급 공무원이 되는 데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난 그 조사에 통과했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이 자리에 와 있을 수 있었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 자리에 앉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에 의해 사회에서 도태되는지 알게 되었다.

신원조사에 불합격하게 되는 이유는 널리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색깔에 의한 면도 분명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한때 잘못한 불장난에 의해서도 쉽게 탈락된다. 소위 말하는 '빨간 줄'이 인생에 그어지는 것이다. 내 밑에는 경찰을 꿈꾸는 아이가 한 명 있는데, 이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 다른 아이들과의 다툼에 의해서 보호감찰을 선고받은 경력이 있다. 차마 안타까워 말은 못하고 있지만, 아마 이 아이는 평생을 노력해도 경찰 시험에 결코 합격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관공서에서 시행하는 그 어떤 채용에도 합격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아이 한 명이 아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났던 난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벌어졌고, 불과 100여 명 남짓한 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빨간 줄'이 간 아이를 찾는다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못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어린 날의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의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미치게 될 영향이란 정말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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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범'의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동정론을 보내고 있지만, 난 또 하나의 권력을 느꼈다. 그는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고, 그 스스로가 여론의 향배를 주도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 있어서는 그의 어린 시절의 실수에 대해 사람들이 더 냉혹한 반응을 보이지만, 또 다른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해하고 양해한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뒤쪽 부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가 이만한 대중적 영향력을 지니지 않았다면 아예 냉혹한 반응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에는 재범보다 '더 작은' 실수를 했으면서도 아무런 발언과 불만도 표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이 세상의 룰'에 순응하면서 사회에서 도태되고 냉혹하게 처벌되는 아이들이 더 많다. 이번에 터진 문제는 단순히 '재범이 어린 시절에 했던 실수'에 불과한 게 아니라, '다른 아이라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에 실수를 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좀 더 크게 바라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실 도리어 '재범'에게는 훨씬 따뜻한 편이 아닌가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는 피라미드와 같아 끝없는 도태 장치에 의해 점점 누군가는 아래 쪽으로 떨어지고 살아남는 자만이 위에서 생존하게 되는 구조라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정말 지극히 소수밖에 올라갈 수 없고, 그러자면 도태의 장치는 수도 없이 많아야 하다 보니 아마도 지금과 같은 현상과 문제가 있는 것일 거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단 한 순간의 잘못으로 도태된 아이들과 사람들을 구제해 줄 방법은 아예 없는 것인가. 물론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모두가 다 도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모두가 다 도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도태되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됨을 또한 모르지 않으리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이번 문제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순혈주의 등의 환상이 일그러져 반영된 측면도 있겠지만, 그 전에 난 우리 사회가 '어린 시절에 했던 잘못과 실수'에 대해 확실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범'은 유명 인사이기 때문에 분명 언젠가는 구제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다른 수많은 우리의 청소년과 아이들은 그냥 이렇게 도태되어 가고 있다는 걸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덧. '재범'은 도덕적인 문제고, 제가 이야기한 사례는 법적인 문제라는 차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기에 가해지는 제재 또한 다르겠죠. '재범'에게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 글이 많이 미숙하고 부족한 데다가 논점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실수'라는 것에 대한 반응과 대처라는 점에 있어서는 일관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덕적인 문제이지만 그로 인해 여론의 재판을 받은 것과 법적인 문제로 법정의 재판을 받은 것도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을 듯합니다.

이런 면에 대해 지적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합당한 지적이라면 능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짧은 글로 생각을 표현해내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는 와중에 정리가 엉키다 보니 글이 부족한 듯합니다. : )

by honest | 2009/09/20 15:32 | 쟁점 | 트랙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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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바삭바삭 달콤한.. 그.. at 2009/09/20 19:16

제목 :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기 위해 재범이를 이용하지 말아..
우리는 과연 '재범'에게만 냉혹한가. 재범이가 유명인사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구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의 인생이 '언젠가'라도 구제될 가능성이 있다면 현재의 우리는 이렇게 날카롭게 신경을 세우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서 글을 쓰실 때는 그 사건의 전후를 파악하시고 글을 써주시길 바란다. 재범이의 인생은 어렸을 적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망가진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의 시초는 일개 네티즌의 악......more

Commented by 몽몽이 at 2009/09/20 16:39
옳은 말씀, 좋은 말씀이십니다.
Commented by honest at 2009/09/20 21:54
이렇게만 말씀해주시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Commented by 인생은아름다워 at 2009/09/20 18:38
주인장님 께서 잘 짚어주셨네요. 좀 더 시야를 넓히고 주위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한 저나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실망스러울 뿐이네요
Commented by honest at 2009/09/20 21:54
전 이런 사건을 계기로 여론이 좀 환기되었으면 좋겠는데, 결국 일개 시민의 문제로 다시 환원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흠.
Commented by qwerty at 2009/09/20 18:43
중고등때 사고쳐서 빨간줄 긋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면
빨간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폭탄을 돌변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하나만 생각해 봅시다.
당신집에 들어왔던 강도를 "한번에 실수라는 이유만으로"
세입자로 받아들일 용기가 있나요?

결론적으로, 이번 블로깅의 경우 논리의 전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놈은 죽었으니 어쩔 수 없고, 산 놈은 용서하자...라는 식의 논리를 저는 싫어합니다)
Commented by honest at 2009/09/20 21:56
저도 사람에 따라 '잠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좀 더 쉽게' 화 내고, 욱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잠재적인' 범죄자라고 가정하고 살아갈 순 없는 거 아닐까요.

저도 아마 세입자로 받아들일 용기가 쉽진 않겠죠.(모순된다고 욕하셔도 할말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 )
Commented by -_- at 2009/09/20 19:50
글내용과는 조금 동떨어지지만
세금횡령이나 사기, 성폭행, 음주운전 같은 걸로 줄이 그어진 것들은요?
사람이 교육을 받아도 바뀌지 않는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온정주의와 막연한 희망은 위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깔보고 무시했던 한국에서 여자따먹고 돈벌고 있으니 친구, 너도 와서 같이 해먹지그래..."
이런 말을 지껄일수 있다는게 참 무섭습니다. 한국인잡아먹는 교포괴물로 자랄지
누가 압니까.
Commented by honest at 2009/09/20 21:58
윗분의 덧글에도 똑같이 답글을 달았는데, 저도 교육을 해서 변화시킨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문제로 줄을 그어버린다면 그 사람에게도 '갱생'의 기회조차 사라져 버리는 것 아닐까요.

성폭행범 같은 경우도 신원공개나 전자팔(발)찌 같은 경우는 상습범에게만 해당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이걸 개인적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한 번의 죄로 죄인낙인을 찍지는 말자는 것이지요.)
Commented by -_- at 2009/09/20 23:14
박재범군의 경우는 우리사회가 키운 인물도 아니고, 그의 부모가 수십년간 한국에
세금을 내면서 공동체의 기여를 하지도 않은걸로 압니다. (교포3세라지요)

이땅에 같이 살고 커가는 학생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글쓴분의
논지에서 말하는 새 기회는 한국청소년에게만 제한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이것도 국수주의 일까요.


위에서 말한 탈세, 횡령,
성폭행 등등의 범죄자는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해악을 끼칠 경우라
한국인이라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적지요. 횡령범을 회사에서 채용거부하거나
성폭행범을 세입자 우대하지 않는 것을 뭐라 하기는 힘들죠.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09/09/20 21:45
사람들이 그렇게 두려워한다는 신원조사를 통해 밝혀진 '위장전입' 고위공직자의 사례를 본다면...음...그걸 관행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실수..겠지요?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의 실수 정도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honest at 2009/09/20 22:01
위장전입 같은 경우는 다른 듯한데요... 전 여지껏 중, 고등학생이 불장난으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누군가를 때리고, 싸우고 하는 것은 상당히 우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도 용서하자고 하는 건 아니고, 제도적으로 이걸 가지고 평생 낙인 찍는 건 문제라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위장전입' 같은 경우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나중에 깊이 반성하고, 죄를 뉘우칠 수도 있겠죠. 다만 그걸 본인의 입으로 '한 번 실수 정도니 눈 감아 주세요' 이렇게 말한다면 말도 안 되겠죠. 그래서 지금 위장전입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09/09/21 00:44
고등학생의 다툼 또한 불장난의 일면이듯, 위장전입 또한 일면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과실만 가엾게 여긴다면 그것은 온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고의로 저지른 행위는 절대 용서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론 과실과 고의에 의한 처벌의 수위는 달라야겠지요. 그러나 과실은 낙인의 대상이 아니고 고의는 낙인의 대상이라는 결론은 ...음. 이것은 저의 지나친 생각이겠지요. 허나 제도적이든 사회적이든 평생 낙인 찍히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닙니까.

본인 입으로 '한 번 실수니 눈 감아 달라'고 하는 주제넘은 자는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대부분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라는 자성의 빛을 보이더군요. 그러면 많은 이들이 그를 동정하고 그의 능력을 아까워 하여 다시금 자리에 천거하기에 이릅니다. 과거 어느 시기에는 허물이 있기만 하면 많은
이들이 그를 비난하여 자리에 물러나게 하는 일이 많았지요.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같은 허물이 있다하여 내치던 과거에 비한다면 이는 공정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우리사회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과거의 허물에 대해 고하를 막론하고 낙인을 찍던 구태에서 벗어나 그의 낙인을 지워주고 끌어안는 시대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운전자가 경찰에게 뇌물을 주고, 또 그 뇌물을 받는 것 또한 상당히 우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실수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요. 성인과 미성년자의 차이는 책임능력에 있습니다. 다시말해 책임이 없다는 것이죠. 이는 자신의 고의 뿐만 아니라 과실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곧 성년자로 취급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도덕적으로 성인과 미성년자를 나누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법적처분을 받은 자는 성년자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죠. 그것이 제도적이든 사회적이든 말이죠. 물론 자신의 행동에 비해 과중한 책임을 요구받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공정하지 않다고 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책임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자신의 과오로 인한 책임은 스스로 메꾸어야하는 것일겁니다.
Commented at 2009/09/21 12: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honest at 2009/09/21 18:45
^^; 부드럽게 이야기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한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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